1970년대 예스더(葉世德)라는 룽민(榮民, 제대군인)이 타이완 정부로부터 다위링 105K 일대의 임야 5.3헥타르를 임대받았고, 고령이 된 후 천진디(陳金地) 씨에게 전대했습니다. 처음에는 사과와 복숭아를 재배했으나, 1980년대에 천진디 씨가 청심우롱 차나무를 시험 재배하기 시작했습니다. 놀랍게도 해발 2,560m 지점에서 재배에 성공했고, 뛰어난 품질로 차 시장에서 호평을 받으며 리산과 다위링 일대에 차 재배 열풍을 불러일으켰습니다. 전성기에는 100K의 천쥔제(陳俊界)/천룽후이(陳隆輝), 101K의 양자오지(楊肇基), 102K의 닝리창(甯立強), 103K의 잉마마(應媽媽)/우궈바오(吳國寶), 104K의 리아춘(李阿春), 그리고 선구자인 105.5K 천진디의 쑹루(松露) 차밭이 있었습니다.